BTS는 군대에 가야 할까, 대체복무를 해야 할까. 해묵은 이 질문이 다시 소환된 건 병역법 개정안이 국회 국방위원회에 상정되면서다. 국익 기여도가 높은 대중문화예술인이 예술요원으로 대체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공정성’ ‘형평성’ ‘국익’ ‘국위선양’과 같은 단어와 함께 표류 중이다. 최근 박형준 부산시장이 2030년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홍보대사인 BTS의 병역 특례를 대통령실에 공개 건의하면서 문제는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떠올랐다.
모두가 알고 있다. 답은 BTS가 내릴 수 없다. 팬덤인 아미 역시 BTS의 군 복무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고 있다. BTS는 이미 “국가의 부름이 있으면 언제든지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국가는 아직도 그들을 어떻게 부를지 정하지 않았다. ‘국민적 공감대’를 이유로 국민의 의견을 묻겠다고 하더니, 또 그에 따라 결론을 정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2018년부터 같은 문제가 공회전하면서 병역 문제의 방향성에 따라 활동 스케줄을 잡아야 하는 BTS와 소속사는 헤매고 있다. 소속사 하이브가 병역 특례 문제에 대한 조속한 결론이 나오길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진형 하이브 커뮤니케이션 총괄은 “최근 몇 년간 병역 제도가 변하고, 그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이런 불확실성들이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대체복무 놓고 형평성 vs 형평성의 대결
예술·체육요원은 사회복무요원이나 전문연구요원처럼 하나의 대체복무 제도다. ‘국위를 선양하고’, ‘문화창달에 기여한’ 예술·체육 특기자가 현역 입대 대신 전시회나 개인 발표, 교직 근무(예술 분야의 경우) 등 병무청장이 정한 분야에서 34개월 동안 복무하는 방식이다. 문제의 카테고리는 예술이다. 대회 수상 등으로 특례를 받을 수 있는 순수예술 분야와 달리, BTS와 같은 대중문화예술인의 경우 자격에 따른 병역 특례가 규정돼 있지 않다. 최근 제기된 BTS 병역 특례론은 ‘군 면제’가 아니라, BTS가 바로 이 예술요원으로 복무하는 것에 대한 논의다.
대립은 치열하다. 문제의 핵심은 ‘형평성’과 또 다른 ‘형평성’이다. 이미 순수예술인이나 체육인들은 국위선양을 했다는 이유로 병역 특례를 받고 있다. 대중문화예술인인 BTS는 한국을 알리고 국익 향상에 도움을 줬지만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순수예술과 대중문화예술 사이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는 대중문화예술인도 유사한 조건을 충족했을 때 병역 특례를 받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BTS 병역 특례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도 형평성을 제시한다. 그 형평성은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장정들과 BTS 사이에서 작용한다. 입대를 앞둔 청년들이 차별을 느끼고 좌절을 겪을 수 있다는 논리다.
외신도 이 갈등에 주목한다. 영국의 유력지 ‘가디언’은 지난 4월 이 문제를 다루며 ‘BTS 병역 문제로 분열된 한국’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정치권에서 이 문제는 여야로 갈리지 않는다. 형평성을 두고 의견이 갈릴 뿐이다. 설훈 민주당 의원은 “클래식 쪽에서는 국내 대회 1등도 특례를 주는데, (BTS는) 형평성 문제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특례를 주는 것이 상식에 맞는데 그것을 결정하는 정책 책임자들이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하고 있다”며 “BTS 사례를 통해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BTS가 국가적 위상을 올리고 있지만 개별 차원에서 병역 특례까지 주는 것은 형평성을 고려했을 때 공정하지 않다”고 말한다.
형평성과 형평성이 부딪치는 문제는 어렵다. 정부는 ‘신중히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국민적 정서’를 반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은 BTS, 나아가 대중문화예술인의 병역 특례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래서 시사저널은 여론조사를 통해 현재 우리 국민이 병역 특례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아봤다. 여론조사는 9월20일 시사리서치에 의뢰해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09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무선 자동응답(ARS) 방식을 사용했고, 통계 보정은 2022년 7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기준으로 성·연령대·지역별 가중치 부여 방식(림가중)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대중문화예술인 대체복무 찬성 63.9% 반대 33.5%
국민의 57.2%가 BTS의 대체복무에 찬성했다. 군대에 가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41.5%였다. ‘잘 모르겠다’고 답한 비중은 1.3%에 그쳤다. 남성의 54.9%, 여성의 62.2%가 BTS가 대체복무를 하는 게 맞다고 답했다. 대다수 연령대에서 대체복무를 찬성한다는 응답률이 높았고, 군대에 가야 한다는 응답보다 대체복무를 하게 해야 한다는 응답이 3.2~31%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유일하게 대체복무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은 연령대는 만18세~29세였다. 이 연령대에서는 군대에 가야 한다는 의견(66.7%)이 대체복무를 해야 한다는 의견(30.8%)보다 높게 나타났다.
대중문화예술인에 대한 병역 특례를 규정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볼까. 찬성하는 입장(63.9%)이 반대하는 입장(33.5%)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국민이 대중문화예술인에 대한 대체복무 제도에 찬성하는 것에는 대중문화예술인이 국위를 선양할 뿐 아니라 전체 국익에 기여한다는 인식이 들어있다. 찬성하는 이유로 ‘국익과 경제 효과(50.8%)’가 과반 이상을 차지했고, 이어 스포츠 선수나 순수예술인과의 형평성(24%), 대중문화예술인의 국위선양 기여(19.8%) 순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이 대중문화예술인이 창출하는 ‘국익’을 우선순위에 둔 것은 BTS가 전 세계적으로 쌓아올린 공적, 그로 인해 한국에 가져온 경제적 이익과 무관하지 않다. BTS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편주현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10월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BTS 콘서트의 경제 효과는 1조원에 육박한다. 이 콘서트로 18만 명이 넘는 외국인 방문객이 유입됐고, 콘서트로 인한 홍보 효과로 8만 명 이상이 한국을 더 방문했다. 평창동계올림픽으로 인한 외국인 방문객의 67%에 달하는 방문객을 모은 셈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BTS가 사흘간 콘서트로 창출한 경제 효과는 중견기업 6개의 연매출을 합한 규모와 맞먹는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BTS가 콘서트를 한 번 열면 1조원이 넘는 경제 효과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콘서트 직접 매출뿐 아니라 상품 생산, 관광산업, 고용에까지도 그 영향이 미친다. BTS로 인해 대중문화예술인이 창출하는 가치에 대해 고려해 보게 됐다는 것도 분명하다. 최근 RM은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한국 문화재 보존과 복원에 사용해 달라며 지난해에 이어 1억원을 기부했다. 기부금은 조선 활옷을 보존하고, 한국 회화 도록을 제작하는 데 사용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단체활동으로 인한 성과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부하는 사례도 이들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국민적 인식을 더하고 있다.
“병역 특례, 국가 이익에 도움 된다” 77.8%
확실히 K팝을 포함한 대중문화예술의 위상은 과거와 달라졌다. BTS의 음악이나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 등 대중문화가 한국과 한글을 알리고 국가적 이익을 견인하는 중요한 통로로 기능하고 있고, 그에 대한 공감대도 국민 사이에 생겼다. 순수예술 분야와 대중문화예술 분야의 기여도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기존에 특례 제도를 주고 있는 분야와 대중문화예술 분야를 비교할 때 58.4%가 기존 분야들이 국위선양에 더 기여한다고 응답했고, 41.1%는 대중문화예술 분야가 국위선양에 더 기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BTS의 대체복무에 찬성하는 의견은 예술 특기자에 대한 병역 특례가 존재하는 한, 국위를 선양하고 국익을 견인하는 대중문화예술인에게도 같은 특례를 부여하는 것이 맞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최광호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사무총장은 “대체복무 제도는 국가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BTS가 너무나도 큰 성과를 냈기 때문에 대중문화예술인의 대체복무 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나오게 된 것”이라며 “만약 병역 특례 자체에 차별 등 문제점이 존재한다면 BTS가 해당되는지 아닌지를 논할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 제도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제도가 있는 한 BTS는 대체복무 특례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BTS는 사익 추구해 특례 불가? 형평성에 어긋나”
최 사무총장 역시 형평성을 강조했다. 그는 “BTS가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특례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는데, 순수예술 분야가 공익만 추구하지는 않는다. 상금을 받고 월드투어를 해 수익도 내지만, 국가에 대한 기여도를 보는 것이다. BTS의 병역 특례를 논하며 해당 비판을 하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정부는 반도체 산업 육성 방침에 따라 반도체 전문인력의 병역 혜택을 검토하겠다고 하면서, 대중문화예술인의 병역 특례에 대해서는 병역자원 감소와 과거 연예인들의 병역 문제를 염두에 두며 눈치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병역 특례에 대한 장기적인 논의는 향후 BTS와 하이브의 활동에도 부정적일 것으로 봤다. 월드투어나 콘서트 등 소속사가 아티스트의 스케줄을 정하기 위해서는 최소 1년 전에 준비해야 하는데, 활동 인원을 확정하지 못할 경우 계약을 하거나 소속사 경영계획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이유에서다.
대중문화예술인의 특례에 대해 반대하는 응답자의 절반가량은 병역 특례 자체의 불공정(49.2%)을 이유로 들었다. 대중문화예술인에 대한 병역 특례 도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병역 특례 제도 전반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대중문화예술인이 국위선양 등에 기여하지 않아서’라고 답한 응답률은 10.7%에 그쳤다. 대중문화예술인의 ‘자격’보다는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응답자들이 대중문화예술인의 병역 특례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역 특례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전체 응답자의 77.8%는 병역 특례 제도가 국위선양 등 도입 취지에 부합하고, 실질적으로 국가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답변은 8.8%에 그쳤다. 병역 특례 제도가 운영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시대에 맞게 그 기준을 정교하게 정하고 그에 따라 특례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화연구자 이지행 박사는 “국익이나 향후 미래 가치를 포함해 병역 특례에 대한 정교한 기준을 만들고, 그 책임이 개인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정부가 결단을 보여야 한다. 정확한 기준이 아니라 BTS를 둘러싼 특례 여부를 논의하니 건설적인 토론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에 맞는 명확한 병역 특례 기준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박사는 “그동안 스포츠 분야에서 병역 특례에 고무줄 같은 기준을 적용해 왔고, 과거의 변칙적인 사례로 국가의 기준은 흔들렸다. 이 때문에 대중이 병역 특례가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며 “병역 특례가 필요하다면 특례 기준을 명확하게 세울 필요가 있다. 국위선양, 경제적 국익 등 동시대적 상황을 검토하고 면밀하게 판단해 기준을 발표하고, 그에 따라 적용 여부를 정하면 된다. 지금까지 특례 적용이 방만했다는 자기반성은 할 수 있지만, 여론의 향방을 봐가면서 결정하겠다는 자세는 잘못됐다. 병역 특례의 정당성과 기준에 대해 전면적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