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적으로 ‘민생’을 외치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현장의 민심엔 닿지 않는 듯하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삼중고에 시달리는 국민의 분노는 치솟는 경제지표만큼이나 고공행진 중이다. 풍성해야 할 추석 장바구니엔 걱정만 담기고, 밥상머리엔 싸늘한 바람이 분다. 뒤를 돌아봐도 앞을 내다봐도 막막한 현실 앞에 성별도 연령도 지역도 따로 없다. 모두가 피할 길 없는 잔인한 재난 앞에 이재민이 됐다.
시사저널은 추석을 앞두고 한국 경제에 대한 국민 의식을 파악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8월30일 시사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1009명을 대상으로 ‘5년 전 대비 경제 사정에 대한 체감’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 ‘5년 내 경제 전망’ 등을 물었다. 그 결과 경제 상황에 대한 불신과 비관이 전 세대·전 지역에 걸쳐 강하게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나 정당 지지도와 달리, 경제에 대한 걱정과 분노만큼은 대한민국이 하나가 돼 있었다.
“5년 후 경제 더 나빠질 것” 비관적 전망 62.2%
이번 조사에서 우리 국민 10명 중 6명은 상류층·중산층·서민층·빈곤층 중 자신을 서민층(60.0%)으로 분류했다. 중산층이라고 응답한 이는 23.1%에 그쳤다. 빈곤층이라고 답한 이도 13.6%에 달했다. 지금 우리 경제의 심각한 인식 수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개인의 최근 경제 사정을 5년 전과 비교했을 때 어떻게 체감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1.0%가 “경제 사정이 더 나빠졌다”고 밝혔다. 전 연령대에서 “더 나빠졌다”는 응답이 “더 좋아졌다”는 응답에 비해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은퇴자 비율이 높은 50대와 60세 이상 중장년층 사이에서 부정적 인식은 더욱 강하게 퍼져 있었다. 이들 10명 중 약 7명이 5년 전보다 지금 사정이 더 어렵다고 답했다(50대 67.2%, 60세 이상 66.6%). 스스로 서민층 혹은 빈곤층이라고 밝힌 이들일수록 지금 경제가 더 나빠졌다는 응답이 높았다. 자신을 빈곤층이라고 꼽은 이들의 응답률은 75.2%에 달했다. 코로나19 장기화와 불안한 국제 정세의 그림자가 낮은 곳에 더 짙게 드리운 것이다.
“5년 전보다 경제가 더 나빠졌다”고 밝힌 응답자에 한해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지 한 번 더 물었다. 이 또한 모든 연령대, 모든 경제 계층에서 과반이 “고물가로 인한 생활비 상승”을 꼽았다. 고물가 부담은 대학생이거나 취업 준비생 혹은 사회 초년생이 대부분인 만 18~29세(61.9%)에서 가장 크게 감지됐다. “금리 상승으로 인한 이자 부담 때문”이라고 지목한 이들은 전체의 16.2%로 나타났는데, 연령대 중 30대의 응답률이 20.0%로 가장 높았다. 30대는 이른바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한 사람)의 대표 세대로 꼽힌다. 최근 고금리 시대에 따른 이들의 시름이 고스란히 반영된 조사 결과로 풀이된다. 이어 “주식·가상화폐 등 투자 손실 때문”은 7.6%로 나타났다.
앞으로 5년은 어떨까. 이 역시 응답자 다수가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전체의 62.2%가 “더 나빠질 것”이라고 답했고, “더 좋아질 것”이라고 본 이는 24.1%에 불과했다. 우리 사회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4050세대에서의 비관은 더욱 짙게 나타났다. 40대에선 72.3%, 50대에선 70.2%가 “더 나빠질 것”이라고 밝혀 현재 이들이 맞닥뜨린 어려움의 깊이를 가늠케 했다. 상류층(52.9%)에서 중산층(57.1%), 서민층(63.1%), 빈곤층(68.6%)으로 갈수록 부정적 전망이 많아졌다.
대구·경북, 60세 이상에서도 “尹 정부 부족한 대응” 1위
이렇게 한국 경제 전체를 총체적 불안으로 이끌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으로 보는지도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2.3%가 “윤석열 정부의 부족한 대응”을 최대 위협 요인으로 지목했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텃밭(대구·경북, 60세 이상)과 험지(광주·전남북, 40대) 사이에 다소 응답 강도의 차이는 나타났지만 전 연령·전 지역에서 1위로 정부의 부족함을 꼽았다. ‘부족함’이라는 평가 안에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반대도 있지만, 정부·여당이 내부 다툼에만 치중해 민생 행보 자체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불만도 담겨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두 번째 요인으로는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18.0%)가 꼽혔다. 즉 국민은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가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되레 위협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 등 불안한 국제 정세”가 16.9%로 3위로 나타났고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경기 침체”가 9.1%로 뒤를 이었다.
연령과 지역을 나눠 살펴보면 2~4위 순서가 조금 다르다. 영남권(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과 60세 이상에선 “야당의 발목잡기” 응답률이 확고한 2위였다. 그러나 나머지 연령과 지역에선 전반적으로 “국제 정세”나 “코로나19” 응답률이 “야당 발목잡기” 응답률과 비등하거나 그보다 오히려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응의 부족함을 따끔하게 지적받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지금 이 순간부터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역시나 당장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고물가·고금리 등 민생 안정”이 최우선이라고 답한 비율이 39.4%로 가장 높았다. 민생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필수인 “야당과의 협치 및 국민 통합”이 21.3%로 뒤를 이었다. “여권 내부의 정치적 안정”도 15.0%를 기록했다. “사회 양극화 문제 해소”는 전체 응답률 4위였지만 만 18~29세 응답자들은 “민생 안정”에 이어 두 번째로 시급한 과제라고 꼽았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중단(51.7%) 〉 확대(30.7%)
코로나19가 2년6개월 넘게 이어지는 동안 전국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겪은 유·무형의 피해는 가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포스트 코로나’로의 전환을 꾀하면서 이들을 향한 지원 폭은 점차 축소될 전망이다. 국민 여론 역시 이러한 분위기와 결을 같이하고 있다. “거리두기로 인해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손실 보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51.7%가 “거리두기가 끝났으므로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대로 “손실이 너무 크므로 지원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30.7%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