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누가 참여를 아름답다 했는가’라는 외침 또는 문제 제기를 심각하게 고민해볼 때가 됐다. 증오와 혐오의 발산을 위한 참여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반드시 해야 할 고민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의 이 지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 포털사이트의 뉴스 댓글이다. 포털 뉴스 서비스가 시작된 후 20여 년 동안 그 영향력은 점점 커져 이제는 국민 10명 중 약 8명이 뉴스를 포털로 소비한다. 포털의 영향력이 확대된 만큼 포털 뉴스에 달리는 댓글의 힘도 점점 세졌다.
한때 포털의 댓글은 ‘댓글 저널리즘’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주목받았다. 단순히 공급자가 제공하는 디지털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의 평가와 의견으로 새로운 여론이 형성된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디지털 공론장에서 시민의 참여를 통해 여론이 숙의된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였다. ‘쌍방향 소통’을 가능케 한 기술의 발전과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는 시너지 효과를 내며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표현의 자유’인가 ‘혐오의 배설’인가
하지만 최근에는 포털의 댓글이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추세다. ‘익명’이라는 그림자 속에 숨어 쏟아내는 무차별적인 혐오와 악의로 인한 피해가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2019년 배우 설리와 2020년 프로배구 선수 고유민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악플’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포털의 연예와 스포츠면 기사에서 댓글 기능이 사라졌지만, 악플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포털 댓글 창이 닫히자 악플러들은 유명인들이 팬들과 소통하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로 옮겨가 직접 악성 메시지(DM)를 보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한 어머니는 방송에서 ‘가장 힘든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악성 댓글이 제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고 답했다.
포털의 댓글이 여론 형성 기능을 하면서 문제는 더욱 커졌다. 포털이 같은 편끼리만 모이는 곳으로 점차 재편되면서 댓글 창의 ‘확증편향’은 점점 확대됐다. ‘네이버는 보수’ ‘다음은 진보’라는 공식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댓글 조작 등을 통해 여론에 개입하려는 세력도 선거 때마다 기승을 부렸다. 무엇보다 소수의 악플러가 댓글 창을 점령해 여론을 과대 대표하는 문제는 정치적 양극화 등의 부작용을 불러왔다. 성균관대 이재국 교수팀이 2021년 8월1일부터 2022년 3월8일까지 대선 관련 뉴스 댓글 3639만 건을 분석한 결과, 댓글 80%를 유권자의 0.25%가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0.25%가 작성한 댓글의 절반가량은 ‘정치적 혐오 표현’이었다.
숱한 논란과 부작용 끝에 최근 국내 포털사이트를 양분하고 있는 네이버와 다음이 댓글 운영 정책을 개편했다. 다음은 뉴스의 댓글 창을 없앴다. 대신 실시간 채팅 방식의 ‘타임톡’을 도입했다. 시간 제한도 생겼다. 기사마다 24시간 동안만 실시간 채팅(타임톡)을 제공한다. 이후 대화는 모두 사라진다. 네이버도 지난 1일 반복적으로 혐오 댓글을 달거나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등 이용 약관을 위반한 사용자의 프로필에 ‘이용 제한’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고 발표했다. 다른 사람들이 해당 사용자의 아이디를 클릭하면 과거 이용 제한 사실과 정지 기간을 확인할 수 있게 이력을 남겨 댓글을 쓰는 사람이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게 하겠다는 정책이다.
우리 국민은 양대 포털사의 댓글 개편 움직임에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까. 과연 포털은 민심이 원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변경한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우리가 어떤 공론장을 지향하고, 그로 인해 어떤 노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가 된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를 통해 포털의 댓글에 대한 국민 정서의 현주소, 향후 개편 방향 등을 입체적으로 파악한 이유다.
“댓글 유지하되 ‘실명제’로 부작용 보완하라”
시사저널이 여론조사기관 ‘시사리서치’에 의뢰해 6월19~21일 전국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에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댓글 정책에 대해 ‘순기능이 있으므로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65.3%로, ‘폐지’ 의견(24.1%)보다 훨씬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0.6%였다.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주목할 만한 결과가 관찰된다. 정치 성향별로 보면, 진보층은 ‘댓글 계속 유지’에 75.5%의 비율로 응답했는데 보수층은 54.8%만 응답했다. 20.7%포인트의 격차가 난다. 중도층은 진보층과 보수층의 중간 정도라고 할 수 있는 66.4%의 응답률을 기록했다. 중도층의 응답률(66.4%)은 전체 평균 응답률(65.3%)과 거의 유사했다. 상대적으로 진보층은 ‘표현의 자유’를 더 옹호하는 반면 보수층은 그 가치보다는 혐오 등에 대한 부작용을 더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대별, 지역별, 성별로는 별다른 차별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포털 뉴스의 댓글 기능 ‘유지’에 더 많은 지지 입장을 보였던 민심은 ‘댓글 실명제’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본인 인증을 해야만 인터넷 뉴스에 댓글을 달 수 있는 실명제에 대한 찬반 질문’에 찬성 의견(68.2%)이 반대 의견(26.4%)을 압도했다. ‘잘 모르겠다’는 5.4%였다. 민심은 댓글 기능 자체를 없애기보다는 ‘댓글 실명제’ 도입 등을 통해 현재 악플이 야기하고 있는 부작용을 해결하는 방향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세대별로 다른 결과가 포착됐다. 18~29세와 3040세대는 ‘댓글 실명제’에 대해 70%대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찬성 응답률을 보였는데, 50대 이상에서는 60%대의 찬성 응답률을 기록했다. 특히 50대는 67.3%, 60대는 64.1%, 70대 이상은 62.7%로 50대 이상에선 나이가 많을수록 ‘댓글 실명제’에 대한 찬성 응답률이 낮아지는 경향을 나타냈다.
“기사와 함께 댓글도 본다” 81.0%
현재 많은 해외 유력지가 댓글 실명제를 시행 중이다.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대표적이다. 뉴욕타임스에선 이름과 거주지를 입력한 다음에야 기사에 댓글을 달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용자가 올린 댓글을 바로 공개하지 않고 커뮤니티팀이 비방, 사적 공격, 비속어 등이 담긴 댓글을 걸러낸 후 게시한다. 뉴욕타임스는 그 댓글에 직접 답을 달아 입장을 밝힌다.
포털에서 뉴스를 보는 상당수는 댓글도 같이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포털 사이트에서 기사를 읽을 때 댓글을 보는가’라는 질문에 ‘본다’는 응답률은 81.0%로 조사됐다. ‘보지 않는다’는 응답률은 18.2%에 그쳤다. 눈에 띄는 점은 40대 이하의 경우 10명 중 9명 가까이가 댓글을 확인한 반면, 70대 이상은 그 비율이 66.9%에 그쳤다는 것이다.
포털 뉴스에 달린 댓글이 여론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모습이었다. ‘포털 뉴스의 댓글이 여론 형성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37.8%)는 의견과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36.5%)는 의견은 비슷한 응답률을 보였다.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14.7%, ‘잘 모르겠다’는 11.0%였다.
흥미로운 점은 정치 성향별로 나타난 차이점이다. 댓글이 여론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의견에 진보층(48.7%)과 중도층(38.4%), 보수층(28.1%)은 각각 다른 의견을 보였다.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진보층(27.7%)과 중도층(35.6%), 보수층(47.8%)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포털 뉴스의 ‘댓글 기능 유지’에 진보층이 보수층에 비해 20%포인트 정도 높은 찬성 의견을 보였는데, 이 질문에서도 비슷한 경향성을 나타낸 셈이다.
포털 ‘다음’이 뉴스의 댓글 창을 없앤 대신 실시간 채팅 방식인 ‘타임톡’을 도입한 사실을 아직 모르는 이가 많았다. 다음의 댓글 운영 정책 개편에 대해 ‘모르고 있다’(62.7%)는 응답률은 ‘알고 있다’(37.3%)는 응답률보다 우세했다. 네이버 이용자들은 다음 이용이 적어 다음의 댓글 창이 없어진 사실을 모를 수도 있고, 새롭게 제공된 타임톡을 댓글 창으로 인식하는 이가 많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다음의 댓글 운영 정책 개편을 인지하고 있다고 응답한 이들은 개편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부정적’이라는 의견이 69.1%로 ‘긍정적’이라는 의견(25.9%)을 앞섰다. 정치 성향별로 보면, ‘긍정적’이라는 의견에 대해 보수층은 42.3%의 응답률을 보였지만 진보층은 19.4%에 그쳤다. 같은 맥락에서 ‘부정적’이라는 의견에 보수층은 52.6%의 의견을 냈지만 진보층은 77.5%로 상대적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10명 중 5명은 ‘포털로 뉴스 소비’에 부정적
포털에서 뉴스를 보는 현상은 사실 매우 ‘한국적’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포털 1위인 구글에는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뉴스 코너가 없다. 뉴스를 보려면 아웃링크 방식을 통해 각 언론사 홈페이지로 연결해야 한다. 과연 우리 국민은 포털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포털에서 언론사 기사를 전달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는 응답률은 49.1%로, ‘긍정적 영향이 더 크다’는 의견(39.9%)을 앞질렀다. ‘잘 모르겠다’는 11.0%였다.
최근 포털들이 뉴스의 편집권 최소화를 위해 인공지능(AI)을 도입해 개인별 관심사를 반영해 뉴스를 추천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알고리즘을 통한 뉴스 배열 방식이 과거보다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보나’라는 질문에 ‘과거보다 부정적’이라는 응답률은 48.0%로 ‘과거보다 긍정적’이라는 응답률 31.3%를 앞섰다. ‘잘 모르겠다’는 20.7%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