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여야 할까. ‘나이 듦’은 ‘누구나’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2025년 고령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를 맞이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이 나라가, 노인과 청년 모두가 행복하고 지속 가능한 나라가 되려면, 우리는 연금과 정년 연장 등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내야 한다. 그렇기에 지하철 무임승차 기준 연령(만 65세)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한 중요한 질문이다. 연금과 정년 연장 등 ‘예고된 미래’의 난제들을 우리가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그 첫 번째 단추를 끼우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임승차 논란이 한국 사회에 던진 화두는 ‘지속 가능성’과 ‘해결법’이란 두 축으로 진행된다. 우선 지속 가능성 측면에선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현재 전국 도시철도의 누적 적자는 24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1조원을 넘어선 서울교통공사 적자의 30%는 지하철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이다. 그런데 2040년 한국의 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35%로 치솟을 전망이다. 현재 기준이라면, 국민의 3분의 1이 무임승차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는 얘기다. 철도공사의 적자는 지방자치단체 재정만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이 될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질문은 ‘누가 이 적자를 부담할 것인가’로 이동한다. 노인의 이동권은 단순히 ‘돈 문제’라는 차원에서만 접근할 성격은 아니다. 의료 접근성은 물론 인권과 결부된 문제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다. 그래서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누군가는 당사자인 노인들이 이제는 요금을 내거나 무임승차 기준 연령을 상향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지자체나 국가가 적자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기회에 아예 노인들이 상당수의 복지 혜택을 받는 만 65세라는 기준점을 만 70세 등으로 끌어올리자는 요구도 나온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내느냐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그로 인해 얼마만큼의 부담을 질 것인지를 합의해 결정하는 문제가 된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를 통해 무임승차에 대한 국민 정서의 현주소, 지금의 노인 복지 수준에 대한 의견 등을 입체적으로 파악한 이유다.
“무임승차 70세부터” 46.3%…70대 이상에서 압도적
시사저널이 여론조사기관 ‘시사리서치’에 의뢰해 2월20~21일 전국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행 만 65세 이상 노인에 대한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에 대해 ‘변경 혹은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67.2%로, ‘유지’ 의견(31.3%)보다 훨씬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 70세로 조정’ 의견이 46.3%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고, ‘연령·소득별 요금 할인’은 12.5%, ‘노인 무임승차 폐지’ 의견은 8.4%로 조사됐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6%였다.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주목할 만한 결과가 관찰된다. 세대별로 보면 70대 이상 응답자만 전체 세대에서 유일하게 무임승차 기준을 만 70세로 변경하자는 의견을 과반 이상(68.9%) 냈다. 20~50대의 30%대는 물론, 60대(44.6%)의 의견과도 상당한 격차다. 정치 성향별로도 확연히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 무임승차 기준을 만 70세로 변경하자는 의견에 대해 진보층과 중도층은 각각 38.5%와 45.9%만 찬성한 반면, 보수층은 57.0%로 상대적으로 높은 찬성 응답률을 보였다. 지역별로도 보수색이 강한 대구·경북(TK) 지역에서만 60%대(64.5%)의 응답률이 나왔다.
‘연령·소득별 요금 할인’은 2030세대(각각 26.9%와 22.8%), ‘노인 무임승차 폐지’는 30대(13.9%)가 상대적으로 높은 선호 의견을 보였다.
‘노인 무임승차에 따른 비용을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그렇다”가 54.2%, “아니다”가 36.9%로 조사됐다. 이 질문에 대해서도 정치 성향별로 확연히 다른 결과가 포착됐다. “그렇다”는 답변에 대해 진보층(70.6%)과 보수층(42.2%)의 응답이 엇갈린 것이다. 중도층(53.5%)은 전체 결과와 거의 비슷했다. 진보세력은 복지 확대에서 재정 투입 등 국가의 역할을 좀 더 강조하는 경향성을 보이는데, 이런 맥락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40대(71.2%)의 응답률도 진보층과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40대가 가장 진보 성향을 드러내는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노인 복지 더 강화” 46.1%, “현재 적절” 33.9%
우리 국민은 ‘노인의 기준’을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현재 만 65세는 전반적인 사회복지 혜택을 받는 기준점이다. 지하철 무임승차 말고도 기초연금과 노인장기요양보험, 고령자 전세금 지원, 이동통신비 감면, 노인 일자리, 각종 예방접종과 치과 지원 등 24개 복지사업의 기준이 만 65세다. 노인을 정의하는 기준 연령이 높아지면 이 모든 복지 혜택을 받는 시기가 미뤄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시사저널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절반 이상(56.0%)은 노인 기준을 ‘만 70세’부터라고 봤다. 현재 기준인 ‘만 65세’를 꼽은 의견(26.6%)과 두 배 이상의 격차가 났다. ‘만 75세’와 ‘만 80세’라는 의견은 각각 9.1%와 3.7%였다. ‘만 60세’로 하향해야 한다는 의견은 4.0%로 조사됐다.
‘만 70세’가 노인의 기준이라는 국민 인식은 늘어난 노인 비중과 평균수명과도 관련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인 무임승차 제도를 처음 도입할 당시 노인 인구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1981년 경로우대법 제정 당시 만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3%대에 불과했다. 초고령 사회(전체 인구의 20%)를 앞둔 지금과는 큰 차이가 난다. 평균수명은 66.1세로 현재(2021년 83.6세)보다 매우 낮았다. 당시의 노인 복지는 전체 인구 중 ‘소수’에게 혜택이 가는 구조였던 셈이다.
무임승차 기준은 물론 노인의 기준 연령도 올려야 한다는 인식이 우세한 것과 달리, 여론은 현재 한국의 노인 복지 수준이 좀 더 두터워져야 한다는 인식을 강하게 드러냈다. ‘현재 우리 노인 복지 수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더 강화해야”한다는 의견은 46.1%로, “현재 적절한 수준”(33.9%)과 “더 축소해야”(13.2%)한다는 의견보다 더 우세했다.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70대 이상(36.4%)에서 가장 낮았고, “더 축소해야 한다”는 응답도 70대 이상(19.9%)에서 가장 높게 나왔다.